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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통권7
 글 쓴 이 : 관리자  등 록 일 : 2016-04-04 오후 10:36:13 조 회 수 : 924
민속박물관에서 생활용구 전시형식의 사례
김삼기(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생활용구는 민속자료 전반에 걸쳐 있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민속자료는 곧 생활용구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런 생활용구를 이용한 전시는 삶의 현장을 전시공간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전시라면 성공적인 전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박물관 종사자는 누구나 알기 쉽게 재미있게 꾸미는 동시에 현장성을 살리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속자료 전시는 미술품처럼 그 자체의 가치나 감상보다는 의미전달에 비중을 두고있기 때문에 전시기법의 다양성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료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 속에서 각각의 자료가 지니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파악될 수 있어야 하고 전통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꾸며져야 한다.

민속자료의 전시 기법에는 실물을 그대로 옮기는 '실물전시'와 그 자료의 주변 환경을 끌어들이는 '디오리마', 개방된 삶의 현장과 같은 '공간전시', 주제별 비교전시, 실존하지 않는 과거 역사 사실을 복원해서 전시하는 미니츄어나 영상을 이용한 영상전시, 그리고 체험전시 등이 있다.

위의 전시기법들은 각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에 적절한 조화를 통해서 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이 되는 것이 전시에서 필요하다.

     
야외 전시에서 살림집 전시형식의 문제점과 대안
강영환(울산대건축학과 교수)
살림집만큼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한 사회집단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은 없을 것이다. 살림집은 생태계를 인식하고 적응하는 방법의 결과이며 예술과 기술인 동시에 일상적 생활양식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지 살림집은 그들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에 국가에서는 문화재 보호법상의 문화재로서 지정ㆍ보존하기도 하고 민속촌과 같은 상업적 목적으로도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용인민속촌이나 양동과 하회마을, 낙안읍성이 살림집을 이용한 대표적인 전시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세 지역의 전시형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살림집의 보호와 전시에 있어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보존된 살림집은 역사의 실체적 유구로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획일적인 보존만을 강제하는 현재의 보존정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존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현지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관광객 모두에게 전통을 지니면서 편리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문화 상품으로써의 전시 형식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주민, 전문가의 합의에 의한 보존과 전시형식이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물질민속 분류
주강현(해양문화재단이사)
북한은 1950년대에 민속학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60년대를 고비로 해서 다양한 연구 성과가 이루어 졌다. 특히 우리와는 다르게 물질민속에 대한 연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이다.

북한 민속학계에서 초기 단계부터 물질민속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유물론적 연구 방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질민속 연구는 생산력 발전이라는 북한의 지상과제와 맞물린 탓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북한에서 물질민속을 분류하는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북한 민속학에서 물질민속학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북한민속의 핵심내용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북한의 물질민속 분류사례를 전장석의 분류, 한철산의 분류, 김내창,선희창의 분류와 조선전사의 분류, 조선민속박물관의 분류, [조선의 민속전승]에 반영된 분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체계적인 물질민속에 대한 분류가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북한의 물질민속 연구 성과는 남한 민속학계에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북한은 일찍부터 물질민속에 관심은 가진 점은 남한 민속학계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이다.

     
우리 민족을 왜 백의 민족이라 불렀나
정종수(문화재관리국 학예연구관)
복색(服色)은 그 민족의 사고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색깔의 선호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이라 불렀을 정도로 왜 흰옷을 즐겨 입었을까? 그에 관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필자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첫째 흰옷은 숭고와 순결을 표현하는 시초 같은 것으로 굳이 염색을 하지 않아도 자연그대로의 색을 나타낸다. 또한 염색이 필요 없고 빨면 빨수록 희어지는 생활의 편리함 때문이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면화가 전래되어 무명옷이 확산되었고 또한 절제와 검소 결백의 미덕이 조선조의 성리학적 이념과 잘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과 왕비의 국상 때 백성들로 하여금 흰옷을 입게 한 것이 그러한 풍속을 더욱 심화시킨 점이 마지막 이유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되어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었던 것은 단순히 흰색이 갖는 상징성만은 아니었고 생활의 편리함과 국가의 정책 등이 이루어낸 것으로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부르는 것이다.

     
씨 뿌리는 연장 - 파종 쟁기(褸梨)
정연학(강남대학교민속학 강사)
씨앗을 뿌릴 때 쓰는 농기구로는 종다래기, 씨갓통(드메), 파종쟁기, 파종기 등이 있으며 그중 근래에 등장한 파종기를 제외하고 가장 선진적인 농기구가 바로 파종쟁기이다. 파종쟁기가 등장하기 전에 씨를 파종하는 도구로는 굴방종류가 쓰여졌고 이는 도구를 이용해서 땅에 구멍을 내어 파종하거나 직접 굴봉으로 파종을 한다는 점에서 파종쟁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파종쟁기의 용도는 씨를 심는 것 이외에도 잡초를 제거하거나 거름을 주는 일까지 여러 곳에 쓰여서 다목적 기능을 가진 농기구로 중국의 북경, 하남성, 산동성, 산서성 등 중국의 화북지방 밭농사 위주지역에서 서한시대에 등장하였다.
     
잔존이 귀한 冊欌
정대영(한국의 欌의 저자, 동인방대표)
조선시대 장(欌) 중에서는 책장이 가장 근본이고 중심이 되는 장 이였다. 책장으로는 두루마리 천판 책장,윗닫이 개폐 기능이 있는 책장 공간 구성이 포함된 책장, 전면 구성이 동자의 알판을 통해 분할된 책장, 전면구성이 문으로 구성된 책장 등이 있다.

책장에는 책이 높게 쌓임을 나누어 관리에 편리한 높이를 층을 통해 나누어 놓았는데 이렇게 나뉜 책장은 다시 나뉘어져 각층마다 독립된 문을 갖추고 있는 것과 층에 관계없이 장문(長門)으로 여닫을 수 있게 구성된 것이 있다. 이 글은 장문으로 된 책장의 쓰임에 있어서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장문으로 된 책장의 제작시의 어려움을 설명해 놓았다.

장문으로 된 책장은 독립된 문을 갖고있는 장에 비해서 매우 단조롭고 무게에 대한 단점과 뒤틀림, 미감에 있어서도 매우 처진다. 이런 장문책장은 좋은 재료로서 단점을 극복을 하더라도 제작에 있어서 충실치 못하다. 또 외형이 층층 구성된 책장이 선호되면서 당대의 선호에 크게 벗어나 독립된 문을 갖춘 책장으로 변조되었거나 고의적으로 원형을 변경 된 것이다. 따라서 장문 책장은 오늘날에는 잔존이 귀한 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장문 책장의 부족한 점을 감싸주지 못한 채 주어진 결과에 치우쳐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애정 부족으로 인해 장문책장은 보존에 있어서도 매우 어렵게 된 것이다.

     
솥과 민속(2)
신영순(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앞선 솥과 민속(1)의 내용에 이은 두 번째 글로서 솥과 민속의 결론 부분에 해당되는 글로 이 글은 솥과 민속(1)에서 다루지 못한 솥의 예언기능과 농사의 풍흉 점치기, 며느리심과 같은 솥에 대한 풍속에 대하여 지금까지 살펴 본 솥과 관련된 민속을 상세히 정리해 놓았다.

지금까지 솥과 민속(1),(2)에서 살펴본 솥은 농사의 풍년, 자손들의 입신양명 등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앞일을 예측하는 신령스러운 주방도구로, 비가 오지 않거나 할 때 솥에 물을 끼얹으면 비가 온다고 믿는 신앙의 대상, 제액을 제거해주는 기능과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형벌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이밖에도 솥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한 솥의 여러 가지 기능들을 살펴봄으로서 솥이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데 사용하는 주방용구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民)들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관련된 중요한 도구로써 역할을 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솥과 민속을 통해서 생활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도구에는 외형적인 측면보다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정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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