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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통권4
 글 쓴 이 : 관리자  등 록 일 : 2016-04-04 오후 10:37:24 조 회 수 : 799
물질과 정신의 세계관 ; 밥 없이 사는 인간의 이야기
주강현(역사민속학, 재단법인 해양문화재단이사)
이 글의 필자는 민속학, 그 중에서도 물질민속학의 연구의 현 실태를 비판하고 물질민속학의 중요성을 자문자답 형식으로 글을 기술하고 있다.

한국의 민속학이나 인문학의 관심 대상은 물질문화보다는 정신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정신편향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루어졌으며 일제시대의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글은 앞선 시대를 스스로 비판하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해답을 찾고자 개화기나 식민지시대, 해방 후 북한에서의 물질민속의 이해방식과 함께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물질민속이 정신적인 측면에 밀려나 현재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았다.

또한 기존의 물질에 대한 천대나 편견을 21세기를 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고 우리는 지금이라도 정신과 물질을 융합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신사고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수세기 동안 밥만을 걱정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밥도 필요하고 생각도 필요한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온전한 통일된 사고를 강조하던 실학파의 동도동기를 모색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생활용구의 개념과 연구의의
배영동(안동대국학부 교수)
생활용구는 문화변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사실이다. 때문에 생활용구가 무엇이며 그것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밝히는 작업은 다른 어떠한 연구보다도 중요하다.

이 글은 생활용구가 무엇이며, 생활용구의 요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생활용구를 연구하는 가치와 그런 작업은 어떠한 의의를 지녔는지를 살펴보았다.

생활용구의 넓은 의미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이다. 즉 생활에 있어서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러나 생활용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활용구를 연구함은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총체적인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문화 연구는 여러 분야에서의 접근이 미비하다. 이글의 주제인 생활용구의 개념과 연구 의의는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농기구 상징연구2
김광언(인하대 교수_
이 글은 통권 2호에 실린 한,중,일 세 나라의 농기구 상징연구의 내용에서 다루지 못한 농기구들을 전편과 마찬가지로 한,중,일 세 나라를 중심으로 몽골과 서양의 농기구들에 대한 풍속과 여러 가지 것들을 소개한 글이다.

여기에서 소개된 농기구들은 땅에 털어놓은 곡식이나 이삭을 쳐서 떨어내는 '도리깨'와 곡식을 넣어두는 '독', 곡식이나 액체 등을 되는 단어이자 그것을 담거나 떠내는 '되', 돼지를 기르는 '돼지우리' 그리고 절벽을 오르내리는데 이용하는 '둥우리', 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에 나오는 뒤웅박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농기구들은 단지 쓰임새를 다룬 글이 아니라 농기구들과 관련된 상징들이나 풍속, 속담이나 신화, 민요 등을 살펴보고 각 나라마다의 독특한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각 나라의 돼지우리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중국에서의 돼지를 신으로 모시는 곳에서의 돼지에 대한 의미를 재미있게 적어 놓았다.

필자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의 농기구 상징 연구를 통해서 우리에게 농기구안에 숨겨져 있는 각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왕골과 용수초
인병선(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우리 나라의 돗자리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의 돗자리는 조선시대에는 중국으로 보내는 진수품 중 가장 중요한 품목 이였다.

이러한 우수한 돗자리가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데는 돗자리를 만드는데 주요 재료로 쓰이는 왕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글은 왕골과 마찬가지로 돗자리의 재료로 쓰이는 용수초(골풀의 중구 명칭, 싹이 틀 때면 가는 줄기가 마치 콩나물처럼 자욱히 올라오는 것이 꼭 수염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물학 상으로 왕골과는 매우 다르다.)가 몇몇 학자에 의해서 마치 왕골인 양 인식되어버린 점을 바로잡고자 기술해 놓았다. 그러기 위해 우리 문헌상에 나타나는 왕골의 명칭을 소개하고 왕골이 용수초(골풀)와 어떻게 다른지를 몇몇 학자들이 발표한 글을 소개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용수초와 왕골은 명백히 다른 점을 올바르게 구명하고자 했다.

이 글은 분명 그들의 글을 터무니없이 비판하는 글은 아니다. 다만 왕골과 용수초가 명백히 다름을 밝히고 우리의 민족식물인 왕골의 지위를 회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나아가서는 지금까지도 잔존해 있는 잘못된 사대용어(事大用語)를 바로 잡고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글이다.

     
의문의 용도 (윗닫이 개폐기능이 있는이층 구조의 장)
정대영(동인방대표)
어떤 기물(器物)이든지 처음부터 일정한 형태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도에 따른 편리성을 지향하다 보면 차츰 일정한 형식이 될 수 있는 구성과 틀을 갖추게 된다. 이 글의 주제인 장(欌)은 그 쓰임에 따라 용도가 확실한 편이다. 따라서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따라 알맞게 제작되어 진다.

그러나 개중에는 이러한 주를 벗어난 형태로 용도를 확정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문의 용도(윗닫이 개폐기능이 있는 이층 구조의 장)이다. 이장은 전라도, 충정도의 매우 국한된 지역에서만 만들어 사용한 일반적인 장의 기능인 책장과 곡식을 저장하는 기능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만들어진 장의 재질 역시 두 가지 기능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의문의 장이 시대가 올라 갈수록 골주(骨主)가 가늘고 섬세하게 제작되어 주로 책장으로 사용되었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뒤주의 쓰임이 확대되고 곡식저장을 위한 뒤주가 보편화되면서 뒤주짜임이 하부구조가 부가되면서 발전한 형태로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바는 단지 가장 후 시점에서 쓰여진 용도 확인과 전해지는 용도를 간접 자료에 의해서 분석한 것이기에 아직 단일 용도로 국한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방울고(考)
양종승(민속학, 한국무속학연구)
방울은 쇠붙이나 단단한 물체로 둥근 공같이 속이 텅비게 해, 두 개 이상의 몸통이 서로 부딪히게 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방울이 쓰여지는 곳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 낚시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낚시방울, 등산할 떄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방울 등이 있다.

이 글은 무속에서 쓰이는 방울을 중심으로 방울의 구입과정과 방울의 쓰임새와 방울의 종류, 무속에 있어서의 방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무속에 있어서의 방울의 중요성은 '방울 부채 없는 무당도 있나' 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울은 신을 부르고 신과 교신하는 기능을 지닌 만큼 무당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이다.

무속에 쓰이는 방울의 종류는 2개 이상 3개이하의 방울이 묶어진 군웅방울, 7개의 방울이 달린 칠성방울, 서울과 황해도의 점쟁이들이 점을 볼 때 사용하는 방울로 방울이 2개 달린 대신방울, 99개의 방울이 달려 불려진 아흔 아홉 상쇠방울이 있다.

방울은 강신 무당들만이 가지는 무구로서 방울을 소유하는 과정 또한 신비한 경험을 겪게 마련이다. 또한 무당이 굿을 하면서 내는 방울 소리는 신을 부를 때 연주되는 음악과 혼합되어 무속음악의 틀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무당은 바로 방울소리를 내는 음악연주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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